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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1 중국 황제와 후궁 그리고 첩들 이야기

예로 부터 중국 황제의 여성편력은 많이 들어서 대충 짐작은 갑니다.
중국 역사에서 이런 여성편력은 무려 황제때부터 시작되는데요.
황제는 무려 1200명의 여인을 거느렸다고 하니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혹 여성분이 이 글을 읽게 되더라도 노여워 하지 말고 욕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역사속 이야기이니까 말입니다.



주나라때는 황제가 합법적으로 거느릴 수 있는 여성의 숫자를 정해 놓았는데요.
합법적으로 121명까지 가능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실 부인으로 맞이 할 수 있는 여성입니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죠.
1명의 정실부인 그러니까 황후가 황제와 잠자리를 하려면 보름에 1번 정도였습니다.
황후를 제외한 부인들은 3명이서 동시에 보름에 한번 황제를 모신다고 합니다.
여기에 9명의 구빈(정실부인을 제외한)도 황제와 잠자리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구빈 아래로는 27명의 세부가 있는데 이들이 황제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서는
5일에 한번 제비 뽑기로 당첨된 3명이 동시에 모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81명의 여어들은 남은 14일중에 매일 다섯이나 여섯명이 뭉쳐서
함께 황제와 잠자리를 했습니다.

이런 황제의 잠자리 복불복 게임은 나름대로 원칙을 준수한 것으로
고서인 <예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진의 시황제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군주답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비번들의 수에 있어도 예외가 아니였지요.
시황제가 주위 국가를 점령할때 마다 그 왕비와 공주, 귀족 가문들의 미인들은
무조껀 입궁시켰습니다. 이렇게 모인 후궁이 만여명입니다.
비록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점령한 국가들을 흡수할때 보다 정치적 사고관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였겠지요.

중국 최고의 여성편력 황제는 진시황이 아닌 한무제입니다.
한무제의 여성편력은 과히 하늘을 찌릅니다. 원래 성격이 호탕한데다가 방탕아 기질이 있어서
진시황이 만들어 놓은 비빈의 8개 등급을 14개로 확충하는 거사를 이룩합니다.
진시황이 만명을 거느렸다고 했더니 자기도 질 수 없다 하여 만팔천으로 대업적을 이룩합니다.
<구당서 식화지>라는 문서에서 한무제의 후궁이 수만명에 달했다고 적혀 있으며
한무제는 삼일 동안 먹지 않고 살 수는 있어도 하루라도 여인없이는 살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고 적혀 있네요. 존경합니다.

그러나 한무제 본인은 그렇게 여성 치마폭에 누워 잠들수 있지만 정작 후궁이라는
직책(?)을 받은 여인들은 그야 말로 지옥이였죠.
황제하고 언제 한번 합궁해보냐가 인생 초미의 관심사였으니까요.



여인 수가 워낙 많다보니 운이 좋아 어쩌다 은총(?)을 입은 여인도 다음 거사를
치루기 위해서 대기표를 받아야 했는데.. 무려 2~3년을 기다려야 순번이 돌아올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단 한번의 총애조차 받지 못한 이들은 그야말로 허벅지 찌르는 독수공방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나이 30이 되면 기능 상실(?) 죄를 물어 출궁 시켜 버렸습니다.

서진의 진무제 사마염도 한무제에 버그가는 여성편력을 휘둘렀는데요.
사마염은 273년 공경보다 낮은 집안의 여자들을 모조리 육궁으로 삼고자 명을 내렸고,
이를 위해 여성을 선별할때 까지 혼인 금지령을 내렸다는 군요.
다음해에 선발된 오천명이 입궁하며 그 울음소리가 장안을 울렸다고 합니다.
8년이 지나 입궁한 여성수가 수만을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런 한무제도 사마염도 베스트 원은 아니였다는 사실...
중국의 베스트 원은 누구일까요?
바로 당현종되시겠습니다. 보유 후궁수 4만명!!



<당현종>
당대에는 귀비, 숙비, 덕비, 현비 이렇게 4비의 정실을 운영하고
후궁은 5국 24사에 설치되어 총 190명으로 모두 품계가 있었다고 하네요.
품계가 없는 궁녀는 장안과 대명, 홍경의 삼궁과 동도, 상양을 포함해
그 수가 4만명이었습니다. 이 수치가 당대 관원들의 수를 합친것 보다
많았다고 하네요. 당시 당의 총 인구는 오천만 가량으로 백성 천명 중 한명은
당 현종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

그러나 그런 현종을 까무러치게 한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양귀비죠.
이 양귀비 한명 때문에 나머지 사만명은 하늘만 보고 살았다는...
당대의 시인 원진은 궁내에서 수족 노릇을 하며 늙어가는 외로운 궁녀들의
안타까움을 시로 읊기도 했습니다.



명대에 와서는 음식을 즐기는것 즉 미식과 여자를 즐기는 것을 인생 2대 최고의 낙으로 삼던 시대였습죠.
황제 역시 산해진미와 여색에 빠져 살았는데 유독 명대 황제의 명이 짦은 이유가
음식의 편식과 여색때문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다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세 위 사진의 인물인 가정제가 있습니다. 아 대단한 분이시죠. 정말 이분은...
도교에 심취해서 불로장생에 푹 빠져 있던 가정제는 여성편력이 심한것이 아니라
불로장생의 비기를 누리겠다고 오로지 잠자리는 동정녀(!)하고만 했다는 사실.

그리고 청대로 넘어와서 궁내 여성의 지위는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여 황제 욕구를 풀어주는것과
자식을 낳아 주는것의 도구화가 되버렸습니다. 청대에는 황제의 잠자리를 봐주는 태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태감들이 후궁의 이름이 적힌 패를 들고 황제가 저녁 식사를 끝마칠때쯤 이 패를 올렸습니다.
황제가 마음에 드는 패를 선택하면 태감은 그 패에 적힌 후궁의 옷을 모조리 탈의 시키고
외투로 알몸을 감싼다음 황제의 침실로 업어 왔다고 합니다.

물론 황제라는 지고지순한 권력의 맨 꼭대기에 있다 보면 별의 별걸 다 해보고 싶겠지요.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도 과하면 해가 되듯이 적당량이 때로는 좋을때도 있다는 겁니다.
황제 안부럽다는 말이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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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페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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