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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3 아더왕은 켈트의 왕인가?

켈트족은 인도·유럽어족의 일파로 B.C. 2000년경부터 유럽에 흩어져 살고 있던 민족이다. 이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은 독일 일대였으나 호전적인 민족성과 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남하를 시작하여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영국) 지방에 진출했다. 

당시 그들은 그리스인들과 고대 로마의 에트루리아인들과 교역을 했다. B.C.390년경에는 로마에 침입, 약탈을 자행하였으며 시칠리아까지 침략했다. 이들의 일부는 포 강 유역에 정주하면서 수백 년 동안 로마인들을 위협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당시 켈트족은 대왕에게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다. B.C.279년, 그리스의 델피를 침입했다가 패퇴했고 이후로는 소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소아시아에서는 B.C.230년,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루스 1세에게 격퇴되었고, 로마 영토 내의 켈트족들은 기원전 2세기경 완전히 정복당했다. 이후 켈트족은 로마의 성장과 켈트족보다 더욱 용맹했던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차츰 설 땅을 잃었다.


켈트족 역사

1. 카이사르 시대의 켈트족 이야기 ‘아스테릭스’

로마인들은 켈트족을 갈리아인이라고 불렀다. 로마인들에 맞서 싸우는 갈리아인(켈트족)들을 소재로 한 영화 아스테릭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카이사르 당시이므로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 원정에 나선 기원전 1세기쯤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 ‘아스테릭스’(원제 :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대 카이사르)는 켈트족 마법사가 만든 마법의 물을 손에 넣어 카이사르에게 반기를 들려고 하는 로마군 대장과 그에 맞서 갈리아인들의 영토를 지키려는 켈트족의 영리한 아스테릭스, 천하장사 오벨릭스가 벌이는 한판 승부를 코믹하게 그렸다.

만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속에서 당시 켈트인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땋은 머리의 귀여운 배불뚝이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켈트족의 전사다. ‘라텐(La Tene) 문화’로 불리는 독특한 철기문화를 일찍이 꽃피운 켈트족은 철로 만든 칼과 도끼를 주요 무기로 사용했다. 이들은 그리스·로마에 앞서 바지를 입었고 전차를 이용할 줄 알았다.

영화 속 마법의 물에 빠져 힘이 장사가 된 오벨릭스는 켈트족이 마법을 신봉하고 물을 신성시했음을 보여준다. 켈트족은 샘, 강, 바다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으며 머나먼 바다 끝에 있는 섬이 저승이라고 생각했다. 새의 날개 모양 투구도 라텐 문화의 특징이다.

흰옷을 입고 신성한 숲을 찾는 명망 높은 마법사는 사제인 드루이드를 나타낸다. 켈트족 고유의 신앙을 ‘드루이드교’라고 하는데 ‘드루이드’라는 말은 ‘참나무를 아는’, 또는 ‘참나무를 찾는’이라는 뜻이다. 드루이드들은 글을 아는 지식층으로, 켈트족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왕을 보좌하는 일을 맡았으며 점을 치고 마법을 쓸 줄 알았다고 한다. 

켈트족들은 자연을 신성시했는데 특히 드루이드들은 겨우살이(풀의 일종)와 겨우살이가 붙어 있는 참나무를 가장 신성한 대상으로 여기고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글을 알았음에도 경전을 남기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서는 로마군과 접전에서 마법으로 갈리아인들이 승리하고 카이사르와 화해하지만 역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기원전 2세기, 더 이상 강성해진 로마를 침략할 수 없었던 갈리아의 켈트족들은 한때 로마와 손잡고 게르만족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기도 했으나 강력한 게르만족들에게 밀려 라인강 동쪽의 영토를 내주었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의 원정으로 갈리아 전체는 로마의 영토가 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를 저술하여 원정에서 얻은 켈트족에 대한 정보를 남겼다. 기원후 1세기에 이르면 마지막 남은 거주지 브리타니아 지방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 켈트의 위대한 왕 아서의 이야기를 담은 ‘카멜롯의 전설’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영국)에 진출한 로마는 남부의 평원지대에 군대를 정주시키고 켈트족을 지배했다. 이들의 지배를 피해 스코트족 등 일부 켈트족들은 북부의 고지대로 피신하여 남부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았다. 로마군 지배하에 있던 남부의 켈트족들은 로마의 선진 문화에 동화되어 로마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예전에 섬기던 켈트의 신과 여신들은 로마 카톨릭의 성인들로 대체되었다.

4세기 이후 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로마군이 본국으로 철수하자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족과 색슨족이 남부 평원지역을 침입, 켈트인들을 학살하고 잉글랜드를 세웠다. 켈트족들은 산악지대인 북부의 스코틀랜드와 서부의 웨일스, 그리고 또 하나의 섬 아일랜드 지역에 정착하여 앵글족과 색슨족이 연합한 잉글랜드와 대립했다. 특히 아일랜드는 로마군의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아서 켈트족 전통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아서왕은 이 무렵의 전설적인 켈트족 왕이다. 아서는 남 웨일스 지방에 거주하던 켈트족 일파인 실루리아족을 다스리던 유더 펜드래곤 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아서가 군대를 일으킨 때는 기원후 500년경이다. 켈트의 구전되는 내용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뛰어난 무용과 마법사 멀린,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의 도움으로 활발히 정복사업을 펼치고 색슨족과 맞서 싸우며 브리튼의 통일을 도모했다. 

어떤 이들은 아서왕이 가공의 인물이라고도 하나 대다수 학자들은 실존 인물의 생애가 과장되어 구비 전승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서왕 이야기를 보면 켈트 신화와 카톨릭 신앙이 혼합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은 성모 마리아를 찬송하고 성배를 찾는 분명한 카톨릭교도임에도 아서왕의 고문인 현자(賢者) 멀린은 뛰어난 마법사다. 그는 앞서 설명한 켈트족 사제 드루이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서왕 이야기에는 호수의 요정 등 많은 요정들이 등장한다.

아서왕 이야기의 일부를 영화화한 ‘카멜롯의 전설’은 아서왕과 왕비 기네비어, 그리고 원탁의 기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사로 알려진 호수의 기사 란스로트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서왕에게 칼을 건네주는 존재도, 과거에 란스로트를 양육했으며 이후 마법사 멀린을 가둬버리는 존재도 호수의 요정이다. 켈트족들은 우물, 샘, 강, 동산 등에는 수호요정이 대개 여성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동화 속의 작은 요정들도 고대 켈트족의 신앙에서 비롯된다. 이들 요정은 언덕 밑에 살고 있다는 신비한 존재다. 요정은 지하에 재산을 모아두고 있으며 수공예 기술이 뛰어나다. 인간 속이기를 좋아하지만 반대로 인간에게 속기도 한다. 원할 때는 모습을 감추기도 하고 성미가 나쁜 요정 아기를 몰래 인간의 아기와 바꿔치기 할 때도 있다. 요정은 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그들의 나라로 데려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서왕은 말년에 조카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다가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켈트족들은 영혼불멸과 환생을 믿어, 위대한 신이나 영웅이 죽으면 요정들의 세계인 머나먼 섬에 가서 상처를 치료받고 쉬다가 다시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러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들의 믿음 속에 아서왕은 전설의 섬 아발론에 잠들어 있다.

그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잉글랜드의 세력이 점차 강해져 10세기 웨일스를 필두로 켈트족 국가들은 잉글랜드에 속속 병합된다. 스코틀랜드의 켈트족들은 강하게 세력을 뻗쳐오는 잉글랜드에 맞서 투쟁했다. 이러한 투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다.


3. 스코틀랜드 켈트족의 독립투쟁과 ‘브레이브 하트’

스코틀랜드는 11세기 켈트 여러 부족 가운데 스코트인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부족들을 통합하여 왕국을 세웠다(1018년). 스코틀랜드의 왕조는 잉글랜드와 항쟁하며 양국간의 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12세기 말부터 잉글랜드의 지배가 시작되자 압제받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항쟁을 시작했다. 13세기에는 윌리엄 월레스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 맞섰는데 그의 영웅적인 생애를 그린 영화가 ‘브레이브 하트’다. 영화에서처럼 월레스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해 잉글랜드와 싸우다 결국 사로잡히는데, 잉글랜드 왕에 대한 반역죄로 영화 이상으로 잔인하게 처형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인들을 일치 단결시켰고, 이후 스코틀랜드의 왕실의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왕위를 손에 넣은 후 월레스의 뜻을 잇는다. 1314년, 바녹번 전투의 대승을 계기로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쟁취했고 이후로 스코틀랜드 왕실은 대외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입고 나온 체크무늬 치마 ‘킬트(Kilt)’는 상의 ‘타탄(Tartan)’과 함께 오늘날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민족 전통의상이 된 타탄과 킬트를 입은 스코틀랜드인들이 백파이프를 부는 모습을 TV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체크무늬 의상과 백파이프는 사실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웨일스, 그리고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등에 거주하는 켈트족들도 공유하는 켈트의 전통이다.

16세기 이래로 스코틀랜드 왕실이 잉글랜드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스코틀랜드는 자연히 잉글랜드와 화해하게 되었다.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사망 후, 친척간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음으로써 양국의 왕실은 합쳐졌다. 100년이 더 지난 1707년, 의회까지 공식적으로 합병되면서 스코틀랜드는 명실상부하게 대영제국의 일부가 된다.


켈트어, 켈트 음악 … 다시 결속하는 켈트족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건재하다. 웨일스도, 12세기 이래 잉글랜드의 압제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종교개혁 당시 스코틀랜드는 장로교 신앙을, 아일랜드는 카톨릭 신앙을 고수함으로써 성공회를 강요하는 잉글랜드의 가혹한 탄압을 받은 바 있어 민족 감정은 더 강화되었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켈트족들이 거주하던 브르타뉴 지방은 ‘공국(公國)’으로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 켈트족 나름의 문화가 전승되다가 16세기에 프랑스에 흡수되었다.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에도 켈트족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18세기에 켈트족 유적이 발굴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면서 켈트족은 다시금 부각된다. 고고학적으로 켈트족이 재발견되자 각지의 켈트족들은 민족의식이 더욱 고양되었다. 

1921년, 아일랜드의 독립도 이러한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한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성공회교도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아일랜드는 아직 영국에 속해 있어 극렬 테러 등 갈등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각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켈트족들은 켈트어와 켈트 음악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그들만의 결속을 다진다.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어, 아일랜드어, 브르타뉴어 등 켈트어 계열 언어들은 현지에서 영어나 불어와 함께 교육되고 있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열리는 켈트 축제는 1950년대에 시작해서 오늘날 전세계의 켈트족들의 잔치로 자리잡았다. 켈트 축제에서 켈트족 전통의상을 입고 켈트 민요를 부르며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이들은 켈트족 연합 국가를 꿈꾸기도 한다.

켈트의 문화는 유럽과 미주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호박 속을 파내어 등불을 켜고 아이들이 마귀나 마녀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핼러윈데이는 켈트족 전통과 카톨릭 신앙이 혼재되어 있는 풍습이며 유럽과 미국 대학들의 5월 축제도 켈트 문화의 유산이다. 이런 풍습과 마법사와 요정이 나오는 동화 속에서 켈트족의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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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페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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