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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헤이안시대(794~1185)에는 달력작성, 천문관측,국가적차원의 제사를 비롯해
나라의 미래를 예언하고 심지어 요괴퇴치, 주술등의 다스리는 「음양도(陰陽道)」라는
학문이 있었습니다. 이런 음양도는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음양도에 대한 기술이
상급에 속한 자를 조정의 국익을 위해 채용하였는데 이들을 음양사(陰陽師)」라 했습니다.
삼라만상을 널리 통달하고 미래를 내다 본다 하여 음양사의 피를 이었거나 음양도를
배우는 사람들을은 아직 일본에서도 존엄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각인 되고 있습니다.
당시 헤이안시대는 일본 전통문화에 불교가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약간은 공격적이고 획기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성격상 불교 중에서도 밀교가
고위층을 상대로 유행하기 시작 합니다. 음양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종교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천황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일종의 국사로서의 역활을
하게 됩니다. 음양도는 정확히 중국 도교가 일본으로 유입되고 뿌리 내리면서 생겨난 종파가 음양도입니다.
음양도에서 유명한 인물을 들자면 바로 아베노 세이메이가 되겠습니다.
세이메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음양사중 한명으로 식신을 부리고
미리를 예견하고 막강한 주술을 행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이메이의 어머니는 여우라는 설이 지배적이죠. 물론 세이메이 가문이 음양사의 집안이였습니다만...
세이메이의 아버지인 아베노 야스나가 상처입은 하얀여우를 구해 주었는데 후에 그 여우는 야스나의 처가 되어
세이메이를 낳았다고 전해지고 있죠.
일본의 음양도는 상생과 상극을 나타내는 음양 오행론이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세이메이는 어렸을때 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음양도에서는 먼저 천문득업생이 된후에 천문박사로 승진 이후 업적을 쌓거나 인정을 받은자에 한하여 대선대부 주계량차관 좌경권대부등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후에는 하리마노카(지금의 장관급)의 중직에 이르게 됩니다.
세이메이라는 명은 역사서에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모든 것이 수수께기로 남아 있습니다. 부친의 이름인 야스나나 모친의 여우설등은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것이지 역사서중에서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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