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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 魂25

산신령의 죄를 물은 태종 조선 태종 때 처음으로 조령(문경 새재)의 길을 개척할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당시 문경현감이 긴급히 조정에 보고하여야 할 중대 안건이 있었습니다. 현감은 역졸중에 신체가 건강하고 발이 빠른 자를 골라서 조정에 상계(上溪)할 장계를 가지고 급히 조령을 넘어가 다음 역까지 체송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감의 명령을 받은 역졸은 서둘러 문경새재를 넘어가는데 새재의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커다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습니다.. 문경현감은 역졸이 호환 당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서 조정에서 재차 보고서를 올리라는 글이 전해 오자 문경현감은 깜짝 놀라 요성역으로 가서 자신이 보낸 역졸을 호출하였으나 그 역졸은 지금까지 귀임하지 않고 행방불명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실을 안.. 2009. 8. 27.
원귀의 복수 이 이야기는 에 기록된 얘기 입니다.. 고려 시대 말기 우왕(禑王, 1364~1389-고려 제32대 왕(재위 1375∼1388)때의 일로 기씨성을 가진 대대로 명 재상을 배출한 훌륭한 가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씨 문중은 기유라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무너지고 말았는데 바로 원귀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유는 기씨 문중의 17대 가주로 가문을 잘 다스리고 나라일을 잘 맡았습니다.. 그런데 재상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부터 그 집에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기유의 손자가 밖에서 놀고 있다가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 오길래 짐안 어른들이 자초 지정을 물었습니다.. 손자가 말하기를 밖에서 놀고 있는데 누군가 내몸을 붙들고 때리기 시작 하였다 라는 것이 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손자의 등.. 2009. 8. 27.
무당의 종류와 특징 우리나라는 무당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정확한 기록은 거의 전무한 편입니다.. 유럽등은 영적 현상과 영능력자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가 시도 되지만 우리 나라는 미신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별다른 기록도 없는 편이죠.. 무당은 고소선 이전부터 내려오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신앙 체계 입니다.. 무당들은 신을 모시는데 이때의 '신(神)'들은 신성한 영인 신령으로 불립니다.. 신령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종류와 성격을 달리하며, 또 외부와의 접촉으로 이전에 없던 신령이 들어와 새로운 신령으로 섬겨지기도 합니다. 한국무에서의 신령은 자연신, 조상신, 지역 및 개인의 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갖습니다. 또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신령(예컨대 예능의 신령인 창부)이 있고, 최영장군과 같이 민중의 비원과 애.. 2009. 8. 27.
조선의 문헌에 기록된 귀매란? 귀매란 우리나라의 전통적 악귀로 귀신매 또는 도깨비매라고 얘기 하는데 '망(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란 예로부터 자연적 에너지를 숭상했는데 이 영엄함 기운을 가진 자연적인 에너지가 인간의 음성적인 정신에 의해 사악하게 변한 거라고 합니다.. 즉 마을에서 모시던 수호신이 인간들이 발산하는 부정적인 기운에 오염되거나 아니면 수호신을 의심해서 부정을 저지를때 발생 하는 영적 존재라고 할수 있죠.. 귀매는 부정적 존재이고 인간의 생명력을 양식으로 하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을 홀리고 또는 괴롭힌다고 합니다. 귀매는 귀신(鬼神)같이 인과율이나 윤회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일단 귀매가 발생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액땜이나 원풀이도 안되고 자연적인 힘이 근원이라 퇴치도 힘듭니다. 귀매는 발생한 곳에.. 2009. 8. 27.
귀신을 쫓는 방법들... 귀신이란 존재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그것을 쫓는 방법이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옛조상들의 지혜의 유산이고... 과연 옛조상들은 어떻한 방법으로 귀신들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이란 존재가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면 분명 먼가 있을것일테지요.. 1. 복숭아 나무... 이는 과일과 더불어 식물중에서 양기가 가장 강합니다. 제사 상에는 절대 복숭아 올리면 안된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겁니다. 이 양기덩어리인 복숭아 나무는 그야말로 음기덩어리인 영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무입니다. 복숭아 나무중 특히 동쪽으로 뻗어 있는 가지를 으뜸으로 치는데 제일 깨끗하고 순수한 양기 덩어리입니다. 즉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잘라만든 목검은 귀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됩니다. 이 북숭아도로 한대 맞으면 음기가 흩어지는 .. 2009. 8. 27.
귀신의 종류와 유형들... 1)국가마 귀신 생전에 청부살인을 하거나 남의 재물을 빌어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솥가마에 끓여지는 과보를 받는 귀신이 된다. 2)침구 귀신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남을 죽인 자는 죽은 후 목구멍이 침처럼 가늘어 침끝만한 물만 넘길 수 있을 뿐이다. 3)식토 귀신 재산 모으기에만 열중하고 인색한 자는 죽은 후 먹은 것을 다 토하는 식토 귀신으로 된다. 4)똥먹는 귀신 아내로서 남편을 속이거나 좋은 음식을 자기만 먹거나 혹은 남편을 버린 자는 죽은 후 똥먹는 귀신으로 된다. 5)불먹는 귀신 남한테 음식을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한 자는 죽은 후 불을 먹은 것처럼 속이 타나 물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불먹는 귀신으로 된다. 6)바람먹는 귀신 매우 풍성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내와 자식에게 주지 않은 자는 죽은.. 2009. 8. 27.
유명한 사고 다발지역이 사연 세계에는 지역마다 독특한 사고 다발 지역이 존재하며 그곳에는 사고 관련 괴담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특정 지점에서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지형이 시각적인 착각을 유발한다거나 지역에서 발산되는 강한 자력의 영향으로 두뇌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다면 시각적인 착각이 발생하지 않게 환경을 조성하거나 자력을 차단하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사고는 여전히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고현장에서 촬영된 귀신.. 일부 초현상 전문가들은 사고 다발 지역에 귀신이 상주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고 다발 지점들 가운데 몇 군데 사연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볼리비아 북부 안데스 산맥에는 '죽음의 도로' 라고 불리는 사고.. 2009. 8. 27.
머리 무덤에 관한 일화 경기도 가평군 명지산 기슭에는 예전에 머리 무덤이라 불리는 무덤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무덤터의 주인은 조선조 태종때 살았던 정치을 이라는 사람으로 가문을 위해 자신을 희생 시켰다고 합니다.. 정씨네 집안은 고려 때까지만 해도 명문 가였으나 조선이 세워진후 관직과 재산을 읽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게다가 흉년이 될때마다 끼니를 걸르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죠.. 정치을은 가족을 부양 하기 위해 출세 하려고 과거를 봤으나 번번히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그는 별로 없는 재산을 모아 고기와 술을 사서 조용히 산 기슭에 있는 산신전으로 가서 산신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을 은밀히 불러 말하기를 오늘 가문의 복을 내려 달라고 산신제를 지냈는데 번번한 제물이 없어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는 .. 2009. 8. 27.
조선 시대..원한 맺힌 의병 이야기 전라북도 장계면에는 한 인물을 모시는 성황당이 있는데 임진왜란때 민병을 일으킨 조억영이란 분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정유재란이 또다시 일어나자 나라는 혼란해 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왜군의 침략에 목숨을 일었습니다.. 이때 장계면의 명덕 이란 마을에 조억영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무예가 출증하고 머리가 좋았으나 신분상의 이유로 출세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장계면은 왜군의 침입이 한창 이여서 그는 군졸로 자원해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억영은 그 근방을 순찰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 오는걸 보았습니다.. 조억영이 누구냐고 소리쳤으나 상대는 대답 하지 않고 다가 왔는데 자세히 보니 산발을 한 피투성이의 여자가 자기 앞으로 다가 오는 것이 였습니다,, 조억영은 순간 섬짓했으나 그 여자를 자세히.. 2009. 8. 27.
충신을 대려간 온조 왕의 혼 경기도 광주 일장산 중턱의 남한산성에는 숭열전이라는 백제 시조인 온조왕과 충정공(忠正公) 월봉 이서를(月峰 李曙.1580~1637)를 제사 지내는 제전이 있습니다.. 이 제전이 세워진데는 사연이 있는데 조선 16대 인조왕은 병자호란이 일어 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청나라에 항전을 했습니다.. 그러던중 인조가 잠이 들었을때 간신 김자점이 보낸 측근에게 암살을 당할뻔 했는데 인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인조를 깨워 그는 암살을 피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인조는 자신을 구해준 보답으로 인조 14년(1636년) 온조왕을 모시는 온조왕사(溫祖王祠)를 건립하기 시작 했습니다. (1638년에 완공 되고 정조 19년(1795) 숭렬전으로 이름 바뀜) 그러던 어느날 인조왕은 어느 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 200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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